26장 1-46절
26장 1-46절
1-2.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조각한 것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신 목적은 너희들은 다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참 하나님을 만나라는 의미가 된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서『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계명은 진리의 말씀이다. 진리의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다. 조문을 보고 이를 지키느니 마는니의
의미가 아니라, 비진리에 대항해서 보존하라는 의미가 된다.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서 같은 의미를 사용하고 있다.『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십계명의 첫째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이다.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름으로 신을
섬긴다. 교회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을 하나님이라고 말을 하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과연 여호와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 모양으로 다가오셨다. 그러나 백성들은 두려우신 하나님으로 보이는 것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의 돌판을 받으러 갈 때, 황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경배를 드렸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하나님을 경배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모두가 하나님을 믿지만
임마누엘이 되지 않으면 다 자기가 생각하고 원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이게 우상이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올 때, 참 하나님이시며, 여호와가 되는 것이다.
둘째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를 위한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경배드리고 주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아모스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경배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하늘에 있는 것은 영적 신비주의를 따르는 것을 두고 말하며, 땅에
있는 것은 돈을 의미하며, 바다에 있는 것은 세상의 힘인 권력을 상징한다. 이것을 위해 경배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복신앙이 대표적이다.
3-13.『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며 내 성소를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너희의 원수들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또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를 번성하게 하고 너희를 창대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한 내 언약을 이행하리라 너희는 오래 두었던 묵은 곡식을 먹다가 새 곡식으로
말미암아 묵은 곡식을 치우게 될 것이며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그들에게 종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규례를 철저히 지키는 자에게
비와 풍성한 열매를 약속하셨다. 중동지역에서 물은 생명과도 같다. 물이 없으면 나무가 올바르게 자라지도 못하고 열매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있을 추수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책임지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준행할때 그 땅이 산물을 내고 밭에 나무는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열매 맺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보면 타작할 것이 너무 많아서 포도를 딸때까지 해야된다고 말씀하신다. 포도가 너무 많아서 따다가
파종할때 까지 포도따기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음식을 배불리 먹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규례를 지키는 자에게 안전함과 편안함을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땅에 평화를 주신다고 약속하신다. 광야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저녁에 안전하게 안심하고 평화를 누리고 평강가운데 잠이 든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그들을 사나운 짐승도 외부에서 오는 침략과 전쟁으로 부터 구원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언제나 신경써야 하는 그런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 땅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안전과 평화를 약속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규례를 지키는 자에게 완벽한 승리를
약속하신다. 승리는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되는 승리이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
되는 승리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에 붙혀 주셔야하는 승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기드온의 사건처럼, 정말 하나님께서 일하셨다 라고 그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승리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규례를 지키는 자에게 번성함과 성장을
약속하신다. 이스라엘을 큰 나라로 만드시겠다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수많은 별들처럼 하시겠다 하는 그 언약을 끝까지 이루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이야기하신다.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순종하고
준행할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끝까지 신실하게 지켜 나가실 것이다. 그래서
천하만민의 백성들이 모델인 이스라엘을 봤을때,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임을 보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규례를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행하심에 대해 약속하신다. 이것은 다른 나라들은 상상도
못할 그런 경험이다. 하나님과 백성들이 관계를 맺고 서로 아는 사이가 되고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놓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막가운데 거하시고 되시고 그 안에서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규례를
지키는 자를 구원으로 인도하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천하만민의 모델인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구원의 길을 제시하시는 것이다. 율법과 모든 규례를 지키는 조건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인간들에게 이런 어려운 조건을 내세우게 된 이유는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도저히 완전하게 지킬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언약의 씨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약속한 언약의 씨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그 이전에도 창세기 3장 15절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언약의 씨를 약속하신 바 있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것을 대부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이 규례를 열심히 지키려고 하고, 제사도
드렸지만, 하나님은 백성들이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그들은 약속의 씨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약속의 씨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언약 백성이 되지 못한다.
14-15.『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내 법도를 싫어하여 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
저주단락은 축복단락(1-13절)과 대칭되면서도 독특한 특징이 있다. 축복단락에서는『너희가 순종하면』이라는 조건이 맨 앞에 한번만 나오지만, 저주단락에서는
처음에『너희가 불순종하면』이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저주단락이 시작될 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너희가 불순종하면(대항하면)』의 표현이 6회 반복된다. 그리고 저주가 총 다섯 가지인데, 그것이 축복의 경우처럼 동시적으로 한꺼번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하나씩 주어지고, 그 다음에 회개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으면 점층적으로 그 강도와 잔혹성을 세게 하여 벌하시는 것이다. 그것을『너희 죄를
위해 너희를 칠 배나 더 징치하리라』라는 표현의 반복이 잘 보여준다. 칠이라는 숫자는 완성, 또는 온전함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징벌은 죄인들에게 온전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는 것은 무지나 연약함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규례를 멸시하고, 배반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멸시하는 이유는 그 규례를 마음에서부터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을 싫어하고 듣기를 거부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곧 언약을 배반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택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고, 이스라엘을 통해서 모든 인간들이 이스라엘과 같은 모습이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하나님이 이렇게 축복과 저주의 상반된 말씀을
하셨는가? 첫째로 이 규정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을 통해서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장치였다. 규례와 율법을 지키려고 할 때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다. 둘째, 약속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약속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저주가 된다는 것이다.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표면적으로는 약속이
될지언정, 이면적으로는 회개하고 돌아서라는 것이다. 신약시대의
새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언약이다.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가 언약 속으로 들어가는 자가 된다. 그래서 더 이상 제사가 필요없으며, 언약 속에 있는 자는 더 이상 율법에 매여있지 않게 된다. 갈라디아서 3장 23-24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구원은 율법을 통해서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자가 된다. 율법은 지키지 못하면,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믿음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의하여 형벌을 받았음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율법에 의해서 죽는 것이다. 만일 스스로 율법에 비추어
죄를 짓는지 살펴보고 열심히 노력하여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율법에 따라 심판하실 것이다. 단 하나라도 어기면 죄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율법에 대해서 벗어나야 하고, 오직 예수와 함께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어야 죄로부터
벗어난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했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율법에서 벗어난 자는 율법으로 심판받지 않는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성령으로 영의 몸을 가지고
있다. 이 영의 몸(부활)은
육의 몸이 예수와 함께 죽었음을 전제로 한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영의 몸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거듭난 몸이다.
요한1서 3장 9절에서『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영의 몸을 가지고 있는 자(부활한 것을 믿는 것)는 육의 몸이 예수와 함께 죽었다. 다만 현실적으로 육체가 있으므로
자신의 정체성이 영의 몸에 있는가 육의 몸에 있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영의 몸에 있는 자는 육의
몸이 죽은 자요, 육에 자신의 정체성을 두면 영의 몸이 다시 태어나지 않은 것이다. 로마서 8장 5절에서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영의 몸을 가진 자도 육신으로
인해서 죄성이 살아날 수 있다. 그래서 육체 가운데, 영적
싸움이 벌어진다. 하나님은 이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라 싸워이겨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16-20.『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가 파종한 것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의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 또 만일 너희가 그렇게까지 되어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일곱 배나 더 징벌하리라 내가 너희의 세력으로 말미암은 교만을 꺾고 너희의 하늘을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을 놋과 같게 하리니 너희의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규례와 법도들을 멸시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셨다. 이는 청종치 않는 것보다 한층 더 심화된 불순종의 형태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질병의 재화가 미치며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두워 진다고 하셨다. 그리고 적에게
패망하여 소출은 대적이 먹고 또한 그들에게 다스림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할 때 속히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채찍으로 징계하시는 것도 저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여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면 벌이 일곱배나 더하여진다. 들짐승이 그들의 자녀를 잡아먹고 그 들의 육축을 감소시킨다. 또한 전쟁을 일으키며, 기근을 보내시며, 땅을 황무케 하고 멸망 중에 흩으신다. 이와 같은 외형적인 저주는
곧 그들의 영의 안식과 평안을 사라지게 한다.
21-22.『너희가 나를 거슬러 내게 청종하지 아니할진대 내가 너희의 죄대로
너희에게 일곱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 내가 들짐승을 너희 중에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의 자녀를 움키고 너희 가축을 멸하며 너희의 수효를 줄이리니
너희의 길들이 황폐하리라』
세 번째 묶음의 저주의 내용은 야생짐승들에 의한 죽음이다. 표면적으로는 사자나 곰과 같은
아주 위험한 짐승들이 온 마을에 창궐해서 돌아다닌다고 생각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생짐승들로 인해서
공포에 떨게 될 것이다. 특히 아이들과 노인들이 수시로 찢겨죽는 일이 발생하여 인구가 대폭적으로 감소하게
될 것이고, 가축들 같은 경우는 아예 씨가 마를 정도로 다 잡아먹히게 될 것이다. 생존자들은 집밖을 나가는 것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길에 사람이 없어 황량하게 될 것이다.
영적으로 야생동물은 본능으로 행동한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약한 동물을 잡아먹는 것이다. 이게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마음 속에는 가나안의 일곱 족속과 같은 것이 나타난다. 성도의 심령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육체의 본성, 혈연관계, 사상과 이념, 종교심, 자기의
의, 지배하고 싶은 욕망, 인공지능(지식과 경험) 등이다. 이전의 “나” 라는 정체성이
바로 이 일곱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의 정체성은 하나님(엘로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도가
되고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져도 이 일곱가지의 악한 모습을 부셔야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고 가신다.
23-26.『이런 일을 당하여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로 말미암아 너희를 칠 배나 더 치리라 내가 칼을 너희에게로 가져다가 언약을 어긴 원수를 갚을 것이며 너희가
성읍에 모일지라도 너희 중에 염병을 보내고 너희를 대적의 손에 넘길 것이며 내가 너희가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
네 번째 묶음의 저주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대항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이다. 25절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원수라고 이야기하셨다. 왜냐하면 언약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3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싫어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싫어하였기 때문이다(레 26:15).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자기를 간절히 찾는 자에게 만나주신다. 반대로
자기를 멸시하는 자를 멸시하시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시고, 자기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신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고 대항하려는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 마음이 투영된 것이 바로 육체로부터 나타난 자기라는 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체로부터 나타난 혼이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옷인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혼(자가: 자아)에 대해서는 관용하지 않으신다.
“너희 죄로 말미암아 너희를 칠 배나 더 치리라 내가 칼을 너희에게로
가져다가 언약을 어긴 원수를 갚을 것이며” 가나안에 들어간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만나게 되는데, 하나님은 여리고 성을 함락하는데, 일곱번을 돌게 하셨다. 일곱은 완전한 수이다. 자기 자신의 심령 속의 이러한 여리고 성과
같은 견고한 자아는 일곱번 도는 것과 같은 침묵으로 버티면,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인내의 고통이 하나님이 마치 칼로 치는 것과 같은 고통을 주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너희가 성읍에 모일지라도 너희 중에 염병(데베르 דֶ֨בֶר֙)을 보내고 너희를 대적의 손에 넘길 것이며” 데베르는 다바르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정돈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대답하다, 정복하다, 명령하다 라는 의미도 있다. 적의 침공 때문에 성벽
안으로 들어가 버티는 것을 말하는데, 그렇게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있을 때에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전염병이다. 하나님은 너희가 성안에서 버티려고 해도 그 안에 전염병이 돌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전염병은 비진리의 말에 점염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비진리의 말을 전하므로서 모두가 비진리의 복음을 퍼뜨리게 된다.
또한 성을 공격하는
나라는 대부분 그 성을 포위한 후 그 안으로 식량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고사작전을 쓰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 성으로 피해 들어간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져 열 명의 여인들이 구울 빵이 한 화덕이면 충분한 상황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열 명의 여인들이라면 열 가정이라는 말인데, 열 가정이 화덕 하나만
피워도 될 정도로 몇 개 안 되는 빵만 구울 수 있으리라는 말씀이다. 영적으로는 하늘의 생명의 말씀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하늘의 생명은 부활이다. 살아있을 때
부활을 믿는 자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강력한 적이 쳐들어와서
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성으로 피하고, 성이 적에게 포위당한 상황인데 그 안에는 전염병이
돌 뿐 아니라 먹을 것도 떨어져 가는 상황, 사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지경이다. 이와 같은 지경이 신도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그렇다는 말이다.
27-33.『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칠 배나 더 징벌하리니 너희가 아들의 살을 먹을 것이요 딸의 살을 먹을 것이며 내가 너희의
산당들을 헐며 너희의 분향단들을 부수고 너희의 시체들을 부숴진 우상들 위에 던지고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할 것이며 내가 너희의 성읍을 황폐하게
하고 너희의 성소들을 황량하게 할 것이요 너희의 향기로운 냄새를 내가 흠향하지 아니하고 그 땅을 황무하게 하리니 거기 거주하는 너희의 원수들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놀랄 것이며 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극심한 기근이나 대적에게 둘러싸여 양식이 전혀 없게 되어졌을 때, 부모가 자식을 죽여서
그 자식을 양식으로 먹는 일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면, 혈육이
가장 먼저 반응한다. 원수가 혈육이 되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일곱 족속에서 육체의 본능 다음으로 무서운 것이 바로 혈육이다. 혈육은 복음을 전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열왕기하 6장 26-29절을 보면,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그리고 이 일은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도 일어났다(애 2:20, 4:10).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하게 하신 뒤에 그들을 우상과 함께 죽인다.
“내가 너희의 산당들을 헐며 너희의 분향단들을 부수고 너희의 시체들을
부숴진 우상들 위에 던지고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할 것이며”
וְהִשְׁמַדְתִּ֞י אֶת־בָּמֹֽתֵיכֶ֗ם וְהִכְרַתִּי֙ אֶת־חַמָּ֣נֵיכֶ֔ם וְנָֽתַתִּי֙ אֶת־פִּגְרֵיכֶ֔ם עַל־פִּגְרֵ֖י גִּלּוּלֵיכֶ֑ם וְגָעֲלָ֥ה נַפְשִׁ֖י אֶתְכֶֽם׃
샤마드(파괴하다) 에트(격조사) 바모테켐(너희의
산당) 웨히크라티(부수다)
에트(격조사) 함마네켐(너희의 분향단) 웨나타티(던지다) 에트(격조사) 파그래캠(너희의 시체) 알(위에) 피그레(생명없는 형상) 굴루레켐(너의 우상) 웨가알라(싫어할
것이다) 납씨(나의 혼) 에트켐(너희를)
우상을 생명없는 형상이라고 말을 한다. 부셔진 우상이라고 번역된 것은 생명없는 형상이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부활이 없는 자들은 모두 이런 생명없는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을 모두 영적으로 시체라는 말로 표현했다. 내 마음이라고
표현한 납씨(기본형은 네페쉬)는 혼(soul)이다. 하나님을 형상화한 표현이 된다. 형상화된 하나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34-39.『너희가 원수의 땅에 살 동안에 너희의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 때에 땅이 안식을 누리리니 너희가 그 땅에 거주하는 동안 너희가 안식할 때에 땅은 쉬지 못하였으나 그 땅이 황무할
동안에는 쉬게 되리라 너희 남은 자에게는 그 원수들의 땅에서 내가 그들의 마음을 약하게 하리니 그들은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 도망하기를
칼을 피하여 도망하듯 할 것이요 쫓는 자가 없어도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은 쫓는 자가 없어도 칼 앞에 있음 같이 서로 짓밟혀 넘어지리니 너희가 원수들을
맞설 힘이 없을 것이요 너희가 여러 민족 중에서 망하리니 너희의 원수들의 땅이 너희를 삼킬 것이라 너희 남은 자가 너희의 원수들의 땅에서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쇠잔하며 그 조상의 죄로 말미암아 그 조상 같이 쇠잔하리라』
하나님은 땅의 안식을 언급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을 소망하며, 하늘의 안식을 바라보므로 땅에 대한 소망은 없어져야 하는데, 여전히
그들이 우상을 가까이 하므로, 하늘의 안식이 아니라, 땅에
대한 안식이 주어진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의 소망을 더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것은 회복의 메시지도 전해준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포로기간이 바로 땅의 밀린 안식년 기간만큼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490년 동안 70번의 안식년을 안 지켰으므로 그들의 포로 기간이 70년으로 한정되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본문에서 열거된 무시무시한 재앙들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BC 586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육을 당했으며,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그 남은 자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 이 형벌이 어찌나 극심했는지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애가를 지어 노래했다.
예레미아 애가 2장 20-22절에서,『여호와여 감찰하소서 뉘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손에 받든 아이를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살륙을 당하오리이까 노유는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사오며 내 처녀들과 소년들이 칼에 죽었나이다 주께서 진노하신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 아니 하시고 살륙하셨나이다. 주께서 내 두려운 일을 사방에서 부르시기를 절기에
무리를 부름 같이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었나이다 내 손에 받들어 기르는 자를 내 원수가 다 멸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대적들의 포로가 되게 하실 것이다. 즉 이스라엘 가운데 대부분은 굶어죽거나
칼에 도륙당해 죽을 것이고 일부 생존자들은 포로로 잡혀가며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어 더 이상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고, 성읍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처럼 황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적의
땅에서도 칼이 끊임없이 따르게 하셔서 끔찍한 살육 당하게끔 하실 것이고, 몸과 마음이 지속적으로 쇠잔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끔찍한 재앙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게
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자의 모습이다.
40-46절.『그들이 나를 거스른 잘못으로 자기의 죄악과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고 또 그들이 내게 대항하므로 나도 그들에게 대항하여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그들의
마음이 낮아져서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 그들이 내 법도를 싫어하며 내 규례를 멸시하였으므로 그 땅을 떠나서 사람이 없을 때에 그 땅은 황폐하여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들은 자기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땅에 있을 때에 내가 그들을 내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고 그들과 맺은 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애굽 땅으로부터 그들을 인도하여 낸 그들의 조상과의 언약을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모세를 통하여 세우신 규례와 법도와 율법이니라』
하나님의 징계와 재앙은 멸하시고자 함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가증히 여기시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 알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회개의 의미를 정확히 깨달아야만 한다. 로마서 3장 19절『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1-3장은 회개에
대한 말씀이다. 4장에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5장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의 연합에 대해서, 6장에서 세례에 대하여 설명한다. 세례를 위해서는 회개와 믿음이 필요하다. 사도행전 26장에서 보면 사도바울이 전한 것을 두 가지로 요약해서 말한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께 대한 믿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두 가지를 전해야만
한다. 구원의 조건이 회개와 믿음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3장은 회개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는 것이다.
세례받을 때『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대신해서 죽으셨기
때문이다. 이 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있겠는가? 그런데 이
사랑은 회개하는 자에게만 적용이 되는 것이다. 회개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한다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말이 들리겠는가? 회개는 돌이키는 것이다.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세례는 옛사람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돌이키는
것은 옛사람에 대한 돌이킴인 것이다.
돌이키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돌이키는 것은 옛것을 포기하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옛것이 내 뜻대로 사는 삶이다.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좋은 사람은 여전히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예수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는 자들이다.
구원받는 자의 삶의 모습은 변화된 것을
깨닫는다. 노아가 120년 동안 의의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가 계획하는 바가 악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로 심판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을 전했다. 그런데 가족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이를 깨닫지 못했다. 오늘날도『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해도 깨닫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깨닫는 자는 삶의 모습이 변화될 것이다. 변화는
옛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나의 옛것보다 나은 삶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자들은 옛것을 포기하는 대신 성령을 추구한다. 그래서 성령으로 치유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옛것은 더 나은 것으로 변화되지 않는다. 그 옛것은 심판 아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옛것은 버려야만 한다. 그래야 새것으로
변하게 된다. 버리는 것이 회개다. 성령을 추구하는 것이
회개가 아니다. 구원은 repair(고치는 것)가 아니라 repent(돌이키는 것)
다.
돌이키는 것은 옛것을 버리고 돌아가는 것이다. 버리는 것이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옛것은 고쳐지지 않는다. 세례(침례)때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은 노아 때 방주 밖에서 죽은 사람들에 대한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만일 노아때
살았더라면 노아가 말했던 복음을 거절하고 이렇게 물에 죽었을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인간에게는 전혀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회개는 옛것이 죽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받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돌이켜 회개할 때 옛 선조들과 세운 언약을 기억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성경의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약속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언약을 체결하시고 순종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인간이 불순종하므로, 이전의 것은 무효화되고, 새사람과 다시 언약을 체결하신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전의 사람들과 맺은 언약을 옛언약, 새사람과 체결한 언약을
새언약이라고 한다.
가장 먼저 언약을 체결한 사람은 아담이였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태어난 아담을 에덴동산에 넣어주시고,『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하므로 에덴동산에서 쫒겨났다. 불순종의 결과는 죽음이다. 옛사람은 죽어야만 한다.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가죽옷을 입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다시 언약을 체결하신다. 그 새언약이 바로 창세기 3장 15절의『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여자의 후손은 장래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약속의 씨를 붙잡지 않는 자를 심판하신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아시대 대홍수를 통해서
노아와 그 가족 8명을 제외하고는 멸절시켰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서 새로운 언약을 하셨다. 창세기 9장 9-13절에서『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이 언약은 불로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3장 6-7절에서『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모든 사람들은 불심판을 받아야 성령으로 새사람(부활)으로 날 수 있는 것이다.
세번째 언약이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언약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다. 그리고 장차 약속의 자녀와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언약으로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람이 동물들을 죽여서 반으로
갈라놓았을 때 하나님의 불이 그 사이로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 이후 13년간 하나님이 나타나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아브람이 99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할례를 행하게 하셨고, 다음해 약속의 자녀를 주시겠다고 다시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몸이 죽은 것같이 되어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약속의 자녀를 믿었는데, 그 자녀가 바로 이삭이었다.
그 다음의 언약이 바로 시내산에서의 언약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을 새긴 두 돌판을 주셨다. 그러나 모세가 두 돌판을 받을 때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세는 돌판을 깨어버렸다. 그 후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두 돌판을 받고, 백성들을 인도하여 가나안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정탐꾼을
보냈는데, 열정탐꾼은 들어가면 죽는다라는 것이다. 모든 백성들이
그 말을 믿고 통곡하며 울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사람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시 19세 이하의 아이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만
가나안에 들어가도록 언약을 맺으신다. 그 새언약은 가나안 입구인 모압 땅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새사람들에게
당부하는 언약의 말씀이었다. 신명기 29장 1절에서『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그래서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자기 백성이 되게 하신다고 맹세까지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가나안의 6족속을 물리치고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게된다.
이스라엘 역사의 중간 과정에서 소금언약, 제사장언약, 다윗언약 들이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사항들을 알려주시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고 언약을 깨어버렸다. 그 내용들이 예레미야에서 언급된다. 예레미야 1장에서 백성들은 이방민족의 침략을 받아 지배당하고 백성들은 끌려간다는 것이다.
백성들은 유배되어 바벨론에서 고초를 겪고, 회개하여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 31장 32-34절에서
새언약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하나님께 대한 언약을
지켜나갔지만, 이후 다시 백성들은 하나님께 범죄를 저질렀다.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받았지만, 정작 메시야로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신성모독죄로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A.D.80년에 로마군에 의해 멸망당하게 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기 전날 밤 새언약을 말씀하셨다. 떡을 떼신
후에『이 잔은 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언약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어 함께 장사된 자를 말한다. 예수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음을 믿는 것과 그 죽음이 나의 죽음이라는 것을 받아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에 대해서(갈라디아서
2장 19절), 죄에 대해서(로마서 6장 2절), 세상에 대해서(갈라디아서 6장 14절) 죽은 자를 나타낸다. 로마서 6장 3절에서도『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예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이 바로 새언약에 참여하는 것이다. 즉
거듭난 자(부활)가 새언약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듭난 자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말한다. 아무나 예수를
믿어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자가 거듭나는 자(부활된 자)이다. 그래서 새언약에 참여하게 된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그래서 로마서 8장
1절의 말씀이 적용된다.『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현재적으로 부활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율법을 적용하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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