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장 1-23절
24장 1-23절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4장은 성막 안의 규례와 생명 배려에 대한 규례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23장의 절기문화와 안식년과
희년을 다루고 있는 25장 사이에 있다. 23장에서 언급했던
네번의 ‘영원한 규례’(14, 21, 31, 41절)에 이어 24장에서도 두번의 ‘영원한 규례’(3, 9절)에 대해 말씀하심으로써 23장과
24장을 연결하셨다.
23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절기, 즉 안식일, 유월절, 무교절, 첫 수확 후 지키는 절기(초실절), 두 번째 수확 후 지키는 절기(칠칠절, 오순절), 대속죄일, 초막절을
지켰다. 24장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에서 지켜야 할 여호와의 규례에 대해서 1~9절까지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10~23절까지는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한 자에 대한 처벌 규정과 이웃에게 해를 주었을 때 배상하는 규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2-4.『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잔대 위의 등잔들을 항상 정리할지니라』
첫 번째, 1-4절까지로서 성막 안의 등불에 관한 영원한 규례이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다.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었다. 성소에는 정금으로 만든 등잔대, 떡상, 분향단이 있고,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으며 그 위에 그룹들과 속죄소가
있다. 먼저 성소의 등잔불을 꺼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 메시야, 그리스도의 의미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이나 왕, 선지자처럼 하나님께 구별된 일꾼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다.
이처럼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름을 채운 등잔불을 꺼뜨리지 않고 밝힌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날마다(저녁부터 아침까지)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은 성도를 가리킨다.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성전)가 세워지며,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기름을 채운 등잔불은 성령 충만을
의미한다.
5-9.『너는 고운 가루를 가져다가 떡 열두 개를 굽되 각 덩이를 십분의
이 에바로 하여 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각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이 떡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두 번째 ‘영원한 규례’는 5-9절로서 거룩한 떡에 관한 것이다.
떡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 떡은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라고 했으니, 진설병은 총 열두개가 되는 것이다. 이 열두개의 떡을 매 안식일마다 새롭게 만들어 진설하라고 하셨다. 진설병 열두개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안식일마다 떡을 새롭게 진설할 때마다 백성들이 안식하지 못한 백성이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안식을 위한 떡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6장 48절에서『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라고 하셨다. 이 떡은 오병이어에서 나오는 떡과 같은 말이다. 떡 다섯개 즉 말씀
다섯개는 모세오경을 말한다. 즉 율법을 말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개는 모세오경(율법)을 말하는 것이다. 물고기는 헬라어로 익스투스라 하며,『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원』이라는
말씀을 포함한다. 물고기는 요나의 표적을 나타낸다. 요나의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삼일만에 부활하심을 나타낸다. 물고기가 두 마리 있다는 말은 초림과
재림을 말한다. 떡 다섯을 먹고 남은 열두 광주리가 남았는데,『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말은 이스라엘(12지파)이 말씀을 들었지만
진리를 모른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재림 하실 때 이스라엘이
광주리에 남아 있는 떡을 먹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줄 때 이스라엘이 깨닫게 되고 떡을 먹게 되는
것이다. 먼저 먹은 자들은 이방인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항상 안식하고 있으며, 생명의 음식을 먹는 것이다.
또한 두 줄로 진설된 떡의 각 줄 위에 정결한 유향을 두었다. 유향은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이 탄생하실 것을 알고 들고 간 세 가지 예물 중 하나였다. 유향은 불 위에 놓고 피우면 향기로운 냄새를 풍긴다. 유향을 화제로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말한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연기를 말한다. 제물이 태워질 때의 연기를 향기로 표현했다. 그래서 그 향기는 죽음으로 드려지는 향기인 것이다.
10-16.『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의 어머니가 이스라엘 여인이요 그의 아버지는
애굽 사람인 어떤 사람이 나가서 한 이스라엘 사람과 진영 중에서 싸우다가 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므로 무리가
끌고 모세에게로 가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슬로밋이요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더라 그들이 그를 가두고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리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그 저주한 사람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그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담당할 것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10절 이하부터 마지막 23절까지는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저주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제3계명을 어긴 사람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낸다.
제3계명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명령된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기 아버지도 아니면서 아버지라고 부르면, 온전하지 못한 자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다. 그들은 우상숭배도 하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이었다. 오늘날
교회에서 신도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서 하나님이라고 부르면 망령된 자가 된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의 어머니가 이스라엘 여인이요 그의 아버지는 애굽 사람인 어떤 사람은 하나님도
좋고 우상도 좋은 영적 간음하는자를 상징한다. 그가 이스라엘 사람들과 싸우는 것은 마치 창세기 6장 2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진리와 비진리가 서로 섞이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비진리가 진리를 압도하게 된다. 그래서 모두가 비진리로 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이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복음과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가 혼합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한다고
말을 하지만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므로 무리가 끌고 모세에게로 가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슬로밋이요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더라』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은 아버지가 애굽사람으로서 약속의 씨가 없는 자라고 말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비진리에 서 있는 자가 되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는 것이다.
וַ֠יִּקֹּב בֶּן־הָֽאִשָּׁ֨ה הַיִּשְׂרְאֵלִ֤ית אֶת־הַשֵּׁם֙ וַיְקַלֵּ֔ל וַיָּבִ֥יאוּ אֹתֹ֖ו אֶל־מֹשֶׁ֑ה וְשֵׁ֥ם אִמֹּ֛ו שְׁלֹמִ֥ית בַּת־דִּבְרִ֖י לְמַטֵּה־דָֽן׃
와이콥(모독하다) 벤(아들) 하이샤(여자의) 하이스러에리트(그
이스라엘) 에트(격조사) 하쉠(이름) 와이칼렐(모독하다) 와야비우(그들이 끌고오다) 오토(그를) 엘(에게) 모세, 웨쉠(이름) 임모(그의 어머니), 쉘로미트(슬로밋), 바트(딸) 디브리, 라마테(지파) 단
쉘로미트는 행복한, 건강한
이라는 의미의 샬롬에서 어근을 찾을 수 있다. 평화롭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디브리는 말많은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바트는 딸이지만, 건축하다, 짓다 라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비진리의 말을 받아드리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가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돌에 맞아 죽는 것이다.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십자가형을 선고받아 죽으신
것이다. 당시 종교지도자들,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같은 기득권 세력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고발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고 있을 때, 이방 민족들이 볼
때, 하나님의 이름을 먹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모독은 한 개인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의미는 하나님 말씀이 진리와 비진리가 섞이는 영적 간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17-22.『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쳐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요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일지니 거류민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하게 할
것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를 죽이면, 반드시 그도 죽는다 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그런데 집승을 죽이면, 짐승으로 갚게 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를 죽일 경우 갚을 방법은 자신의 몸으로 갚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예수께서 대속으로 죽으시는
것이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또한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대로 그에게 배상하라도록
하고 있다.『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피해자의 입장이 아니라 피의자의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3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마태복음 5장 43절이다.『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대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상대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은 물적
손실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서 영적 상실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의 영적 회복을 위해 기꺼이 행하라는 것이다.
23.『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니 그들이 그 저주한 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쳤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저주한 자와 돌이 만나는 것이다.
저주한 자는 죄인을 의미한다. 십자가의 죽음이다.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대속의 죽음이다. 죄인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연합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 진영 밖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연합한 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될 것이다. 이것이
영원한 규례가 된다. 부활함을 믿는 자는 성령으로 거듭난 자이며, 생명의
떡을 먹는 자인 것이다. 24장 앞부분에서 등잔대의 불은 성령세례를 의미하고, 생명의 떡은 하늘로부터 오는 부활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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